정재우 칼럼/ 빨리 성장한 사회, 천천히 무너지는 공동체

사회 / 한상옥 기자 / 2026-10-31 19: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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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성장한 사회가 천천히 무너지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이웃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며, 낯선 사람에게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명절이 되어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고,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청년들, 홀로 늙어 가는 노인들, 인구가 줄어 빈집만 늘어나는 지방의 마을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때 가족과 이웃이 나누어 맡았던 돌봄과 부양의 책임은 이제 개인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 정재우 대표(가족행복학교)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삶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속도에 비해 서로를 돌보고 연결하는 관계와 사회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편리해진 세상에서 살지만 정작 어려울 때 기댈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서울대학교 장경섭 석좌교수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압축적 근대성’을 제시했다. 서구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한 산업화와 도시화, 가족과 사회제도의 변화가 한국에서는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 가족문화와 현대적 경제체제가 뒤섞이면서 가족은 경제성장과 교육, 복지의 버팀목이 되었지만, 동시에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까지 떠안았다.

 

가족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면서 그 자체로 무거운 짐이 되는 역설이 생겨난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공명 이론’으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속도와 성장, 효율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세계와 타인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공명"이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하는 관계다. 가족과 친구, 자연과 예술, 종교와 공동체에서 살아 있는 연결을 경험할 때 인간은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

두 학자의 관점은 서로 다른 곳을 비추지만 함께 읽을 때 더욱 깊어진다. 장경섭이 한국 사회의 압축적 변화와 그 구조적 부담을 설명한다면, 로자는 그 변화 속에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메마르고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나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왔는지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그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여기서 인문학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문학은 타인의 슬픔을 내 일처럼 느끼게 하고, 철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삶의 기준을 다시 묻게 한다. 역사와 예술은 서로 다른 세대와 경험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인문학은 경쟁과 효율의 논리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공감과 책임, 연대의 감각을 길러 준다. 서로 다른 삶을 존중하면서도 인간이 왜 관계를 필요로 하는지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 역시 이 시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홀로 사는 노인과 돌봄이 필요한 가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과 이주민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공간을 마련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이웃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소외된 이들의 곁에 서셨듯, 교회도 사람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우리는 빠른 성장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외로운 사람이 늘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 사라진다면, 그것을 진정한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빨리 성장한 사회가 천천히 무너지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이웃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며, 낯선 사람에게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제도는 삶의 토대를 마련하고, 인문학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며, 교회와 공동체는 그 마음을 돌봄과 연대로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가족 형태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세상이다.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진정한 미래다.

 

세계투데이 / 한상옥 기자 san919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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