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 칼럼 / 유치원생들의 침착함
- 사회 / 한상옥 기자 / 2026-10-25 12:51:21
지난 10월 20일경 충남 천안의 한 유치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3층 옥상에서 불이 난 긴박한 상황에서도 교사들은 원생 150여 명을 침착하게 대피시켰다. 어린아이들은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질서를 지켰고, 전혀 인명 피해 없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위기 앞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침착함은 오히려 어른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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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우 대표(가족행복학교) |
교사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급한 순간에 아이들이 안내를 잘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반복한 안전교육과 대피훈련 덕분일 것이다. 일상에서 배우는 질서와 약속, 어른의 말을 듣고 함께 행동하는 습관이 결정적인 순간에 생명을 지킨 셈이다.
아파트 공원에서 어린이집 아이들이 교사의 인솔에 따라 줄지어 걷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아파트 단지의 맘스테이션에서 아이들을 배웅하거나 돌아오는 아이들을 반기는 부모들의 모습도 정겹다.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 아이들은 공동생활의 규칙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익힌다.
우리는 이번 소식을 기뻐하면서도 1999년 6월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실한 시설과 소방 안전의 문제, 허술한 대응체계가 참사의 비극을 키웠다.
어린아이들의 생명은 어른들이 마련한 시설과 제도, 그리고 책임 있는 대응에 달려 있다. 안전교육만으로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위험을 미리 없애고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태원 참사 역시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군중이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에 대한 대비와 현장 통제, 기관 간 대응체계의 중요성을 뼈아프게 일깨웠다. 희생자 유가족들의 슬픔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그 책임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 참사의 기억은 추모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
작금의 사회 곳곳의 현장을 돌아보면, 국정감사장에서 되풀이되는 막말과 정쟁은 국민의 피로감만 키운다. 민생과 약자를 앞세우면서도 진영의 유불리를 먼저 따진다면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다른 나라의 혼란에 빠진 시위와 사회적 갈등, 요동치는 증시와 안보 불안을 지켜보며 필요한 것은 충돌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다. 질서는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며, 비판과 저항을 억누르는 구실도 아니다.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합의한 원칙을 실천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본보기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천안의 유치원생들에게서 그 모습을 본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뛰쳐나가지 않았고, 선생님의 안내를 믿고 함께 움직였다. 평소 배운 작은 약속이 위기의 순간에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예방은 치료보다 낫다”는 뜻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안전은 사고가 일어난 뒤 수습하는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험을 미리 살피고, 약속한 원칙을 지키며, 잘못이 드러났을 때 책임을 다하는 사회가 안전한 사회다.
천안의 어린이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생명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생명을 지키는 질서는 평소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세계투데이 / 한상옥 기자 san919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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