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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희 작가 겸 방송인 |
2009년, 우연히 코코 샤넬의 영화를 보았다.
영화보다 오래 남은 것은 그녀가 입은 옷보다 그녀가 가진 태도였다.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것.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
덜어낼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그날 이후 샤넬의 문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나씩 읽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서른 개의 문장이 남았다.
샤넬은 패션을 바꾼 사람이지만,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패션 그 너머에 있는 한 여성의 태도였다.
그녀에게 스타일은 옷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방식에 가까웠다.
단순함.
독립.
자신감.
절제.
그리고 자기만의 기준.
지금 우리가 너무 쉽게 사용하는 ‘나답게’라는 말도, 샤넬의 언어로 읽으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나답다는 것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준 방식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샤넬을 오래 바라볼수록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이름을 만들고, 세상의 인정을 얻는 것.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성취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많이 가져도, 더 유명해져도, 더 사랑받아도
설명되지 않는 빈자리가 남는다.
나는 그 지점에서 샤넬의 철학을 잠시 내려놓고
내 삶의 기준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돌아간 곳은 하나님이었다.
신앙은 ‘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안에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샤넬이 말한 아름다움도 다시 보인다.
아름다움은 나를 과시하는 장식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태도일 수 있다.
품격은 사람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독립은 누구도 필요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하며 사는 것.
그리고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옳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세상의 좋은 것들을 좋아한다.
패션도, 아름다운 것들도, 잘 만들어진 문장도 좋아한다.
세상을 등지고 살 생각은 없다.
좋은 것은 배우고, 아름다운 것은 즐기고,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에도 마음을 열어두고 싶다.
다만 무엇을 좋아하느냐와 무엇을 믿느냐는 다른 문제다.
샤넬에게서 스타일을 배울 수는 있지만
내 삶의 기준까지 빌릴 필요는 없다.
세상의 스타일은 시즌마다 바뀐다.
사람의 기준도 유행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내가 믿는 진리는 유행하지 않는다.
2009년, 나는 한 여인의 스타일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샤넬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묻는 것은
‘누구를 바라보며 살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결국 스타일의 가장 마지막에는 옷이 없다.
이름도, 브랜드도, 명성도 없다.
남는 것은 한 사람이 평생 무엇을 기준 삼아 살았는가 하는 것.
나는 이제 그 기준을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고 싶다.
그 위에서 나답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오래가는 스타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