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말하기 어려운 이민 이야기

선교일반 / 노승빈 기자 / 2025-10-27 06:47:39
  • 카카오톡 보내기
ICE 단속 후, 깊어지는 한인 교회의 고뇌

 

“이민 문제를 말하기 두렵다” — 틱톡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단속 이후에도 침묵을 지키는 한인 교회의 현실을 조명했다.
지난달 조지아주 사바나(Savannah) 인근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한국 국적자 300명 이상이 ICE에 의해 단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틱톡(TikTok)에서 뷰티 리뷰와 일상 영상을 올리던 **크리스티나 신(Christina Shin)**은 이민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신씨는 “불법은 불법이다(Illegal is illegal)”라는 문구로 ICE의 법 집행을 옹호하던 일부 한인 기독교인들의 반응을 비판하며, “우리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공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부모님이 합법적으로 이민 와서 서류를 갖추고, 나를 미국에서 태어나게 한 건 특권이었다”며, 이민의 현실을 외면하는 교인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했다.

애틀랜타에서 사무직 매니저로 일하는 35세의 신씨는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지만, 같은 한인 기독교인들의 무관심에 “피가 끓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 안에서는 이 문제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서로 사랑하려는 교회에서 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며,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명 공개도 거부했다.

미국 최대 규모의 단속 — 충격에 휩싸인 한인 사회
9월 4일,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공동 운영하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이번 단속은 미국 이민당국이 단일 현장에서 실시한 최대 규모 작전이었다.
수갑을 찬 노동자들의 영상과 수용소 내 열악한 처우에 대한 보고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한인 사회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미 국토안보부(U.S. Homeland Security)는 체포된 이들이 비자를 초과 체류했거나 불법으로 입국했다고 주장했으나, 일부 노동자들은 부당한 단속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은 다른 한인 단속 사례들과 맞물려 있었다. 6월에는 감형 후 추방 명령을 받았던 **제스틴 정(Justin Chung)**이 체포됐고, 7월에는 박사과정 중이던 **김태흥(Will Kim)**이 변호사 접견 없이 구금됐다. 8월에는 루이지애나 수용시설에 있던 퍼듀대학교 학생 **고연수(Yeonsoo Go)**가 종교 지도자들의 탄원으로 석방됐다.

“법질서냐, 자비냐” — 침묵으로 남은 교회의 선택
한국에서도 현대-LG 단속을 두고 여야를 막론한 비판이 이어졌으며, 한 달 후 미국 정부는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다.
그러나 미국 내 한인 교회들은 여전히 신중하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이민 단속에 대해, 일부는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일부는 “이민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잃는 일”이라며 갈등을 겪고 있다.

결국 다수의 교회는 정치적 분열을 우려해 침묵을 선택했다. 반면, 시카고의 ‘이민자 보호 교회 네트워크(Korean American Sanctuary Church Network)’ 등은 법률 지원과 피난처 제공, 재정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신씨는 “우리는 약하고 절차를 밟기 어려운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 이민의 현실 — 신앙과 제도의 경계에서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미국에는 약 11만 명의 한국 출신 미등록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다. 현재 한인 인구는 180만 명에 이르며, 그중 3분의 1 이상이 개신교 신자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Fairfax)에서 소기업을 운영하는 34세의 집사 **사무엘 숀(Samuel Shon)**은 “범죄는 범죄지만, 자비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라면서도, 시민권을 갖지 못한 이들을 향한 연민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부모는 1980년대 노점상으로 시작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숀은 “합법 이민은 어렵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과정”이라며 “시민권에도 마땅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이라면 팔을 벌리셨을 것”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42세 **제임스 채(James Chae)**는 아내가 시민권을 얻기까지 7년을 기다린 경험이 있다. 그는 “이민법을 개혁해야 하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기존 법 집행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라면 불법체류자들을 향해 팔을 벌리셨을 것”이라며 “그분의 사랑을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고백했다.

정치와 신앙 사이 — 분열을 우려하는 목회자들
많은 한인 목회자들은 여전히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있다. 레이먼드 창(Raymond Chang) 목사(아시아계 미국인 기독교협력체 회장)는 “일부 목회자들은 미등록 교인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 침묵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치 대화가 너무 분열적이고 독성이 강해, 제자훈련의 장마저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롱아일랜드의 26세 청년 **저스틴 오(Justin Oh)**는 한때 “목사는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고 믿었으나, 혐오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입장을 바꾸었다. “이제 침묵은 옳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섬이 아니다”
아틀랜타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25세 **미나 송 리(Mina Song Lee)**는 “한국 교회는 개인 신앙만 강조해 사회 문제를 외면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뉴욕의 대형 오순절 교회에서 자라며 “신앙은 개인적이지 사회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신앙을 배우지 못했다”며, 그 이유를 탐구하기 위해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다.

변화의 조짐 — 교회, 다시 사회로 나서다
최근 조지아주의 여러 교회가 ‘권리 알기(Know Your Rights)’ 교육을 주최하고, 뉴욕의 그레이스 최(Grace Choi) 목사는 이를 “비당파적 신앙운동의 새 흐름”으로 평가했다.
2017년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대응해 조직된 ‘이민자 보호 교회 네트워크’는 현재 뉴욕과 시카고 등지의 150개 교회가 참여 중이다.

법률 태스크포스 책임자 **최영수(Youngsoo Choi)**는 “이제 교회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교인들도 그 의미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ICE가 원한다면, 교회에도 들어올 수 있다”
한편 신씨는 여전히 교회 안에서는 조심스럽다. 그녀의 틱톡은 다시 일상 콘텐츠로 돌아갔지만, 소그룹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ICE가 정말 원한다면, 모든 교회에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 세계투데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