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진흥원, 유교 아닌 기독교···'선비목사' 이원영 조명

종교 일반 / 신종모 기자 / 2021-04-23 01:06:12
  • 카카오톡 보내기
- 관련 36책 및 25점 문서 보관…소장자료심층연구포럼 추진

[세계투데이 = 신종모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최근 연구 분야를 근대 기독교 연구로 확장한 가운데 ‘선비목사’로 불리는 이원영 목사(1886~1958)에 관련 연구를 시작해

▲ 이원영 목사/ 사진 = 안동서부교회 제공.

주목 받고 있다.

 

진흥원 측에 따르면 이원영 목사와 관련한 연구는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모여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는 ‘소장자료심층연구포럼’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현재 이 목사 관련 36책의 서책과 25점의 문서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심층연구포럼에는 기독교 신학자, 종교학 연구자, 근대사 연구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 5명이 참여한다. 이 목사의 내면적 사유의 두 축인 유학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한국의 근현대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그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추진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시대적으로는 전근대인 조선시대, 주제에서는 유교와 유학 사상을 위주로 추진됐다. 57만여점의 소장자료 중 조선시대 유학 관련 자료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이원영 목사 연구가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시대적으로는 기존의 조선시대를 넘어 전근대에서 근현대까지 확장하는 과정에 있다”라며 “기존의 유학 중심의 틀을 벗어나 기독교를 포함해 다양한 영역으로 시야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원영 목사는 지난 1945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교단의 대표직을 맡는 등 한국 기독교사에 중요한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안동 도산면 원촌리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난 그는 1911년 봉성측량학원을 거쳐 보문의숙(寶文義塾)을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안동군 예안 장날인 3월 16일 예안선명학교와 예안보통학교 학생들을 동원,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이후 주모자로 잡혀 1년 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수감 중 장로교 장로 이상동(李尙洞)을 만나 감화를 받아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30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곧 경안노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고, 영주중앙교회에 취임했고, 신사참배가 강요된 1938년 이후 이를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서너 차례에 걸쳐 투옥당하기도 했다. 광복 후 안동서부교회를 시무하면서 안동성경학원을 개원해 청소년교역자 양성에 진력했다.

 

1945년 총회장으로 선출돼 대한예수교 장로회 교단의 대표직을 맡았다. 또 1958년 안동서부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됐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노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신사참배를 부인한 출옥성도였으나 신사참배에 응한 동역자를 비판한 바 없고, 특히 성경강해교수법이 유명했다.

 

신종모 기자 jmshin@segyetoday.com

[ⓒ 세계투데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