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칼럼] 종교개혁주일, 핼러윈데이를 지내며

칼럼·기고 / 김명상 기자 / 2021-11-03 12: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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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어린 자녀를 둔 직장인 A씨는 10월의 마지막 주가 되면 부부간의 말타툼이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아이가 일곱 살인데 유치원에서 10월 말이면 핼러윈 복장을 하고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지침이 오는 것에 대한 시각차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자극적인 복장에 각종 도구를 들려 보내자는 엄마의 생각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봐도 성에 차지 않은 판에 교육기관인 유치원까지 오징어게임 캐릭터와 마귀 등을 형상화한 복장을 입혀 등원시킨다는 게 못마땅한 아빠의 주장이 팽팽하다.

 

A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젊은 층의 가정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다. 어찌 보면 사회 문화적 유행에 민감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겐 특정한 의미를 지닌 축제나 행사를 바라보는 이질적인 판단 기준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난 한주 서울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핼러윈(Halloween) 축제는 '성인들의 날 전야(All Hallows Eve)'가 기원이다. 기원전 500년경 아일랜드 켈트족의 새해 첫날은 1월 1일이 아닌,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일이었던 풍습에서 기원했다.

 

당시 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죽은 후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다가 내세로 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을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귀신 분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들었다는 의식이 바로 '할로윈데이'다.

 

이후 유럽 내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11월 1일을 '성인의 날(All Hallow Day)'로 지정했고, 그 전야인 10월 31일이 '성인들의 날 전야'로 여기면서 훗날 '할로윈 축제’로 변모됐으며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도 할로윈데이가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10월 31일로 상징되는 10월의 마지막 주는 '종교개혁주일(Religious Reformation Sunday)'이기도 하다. 이날은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가 1517년 10월 31일 유럽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린 기념일이다.

 

당시 루터 목사는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교회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으로 구성된 반박문을 붙이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인들은 이날을 기념하며 교회들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다짐하게 된다. 독일의 루터파 교회나 연합지역 교회들은 10월 31일 또는 10월의 마지막 주간을 기념일로 지켜왔다.

 

교계 전반에서 핼러윈 축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건 '종교개혁주일' 때문만은 아니다. 결국 자신의 영혼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풍습적으로 기원된 의식이 지나친 상업성에 가려져 충동적 행동과 복장, 악귀를 선망하는 듯한 행위로 표출되는 경향 때문이다. 

 

포용적 이해의 시각은 교계에도 존재한다. 종교 개혁적 성향의 한 선교사가 "핼러윈 문화는 당초 악귀에게 자신의 영혼과 몸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식을 되살리자는 의미와 장난기 섞인 행동이 가미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축제다"고 말한 것 같이 즐기는 문화생활의 일부일 수 있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다른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게 기독교계의 중론이다. 신국원 총신대 명예교수는 "신앙의 전통을 바로 잇기 위해서는 시대를 살아내면서 '이 사람은 좀 별종이다'라는 차가운 시선을 각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앙의 전통을 붙잡기 위해서는 핼러윈 축제를 덤덤하게 대함으로써 되려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2세기 초 익명의 저자가 쓴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에 보면 '우리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언어를 쓰고 똑같이 살지만, 핍박받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게 작가의 설명이다. 

 

핼러윈 현상의 부작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되려 하나님을 바라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높인다. 세상의 시각이 다소 냉소적이라 할지라도 주관적인 인식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상을 보호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겸허함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시작된 종교개혁주인 10월의 마지막 주는 이제 막 지나갔다. 종교개혁주에 펼쳐진 핼러윈 축제의 현장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스치는 건 기독교계 전반의 우려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교계와 교회는 종교개혁주일과 핼러윈축제의 대치적 상황에 대해 세상을 행함에 있어 자신감과 겸허함을 믿음으로 이어가는 어린 신도들을 위해 좀 현실적이고 더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소통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의 일부 교회들이 핼러윈 축제를 자연스러운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그 요상스런 축제일을 주님의 믿음 안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성령 강화의 계기로 삼고 되려 강력한 믿음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의 기회로 삼고 있다는 점은 새겨 볼 일이다. 

 

김명상 기자 terry@segy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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